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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부숴버리자
KIDCA
2002.02.20 15:02

장난감을 부숴버리자


우리들 부모는 아이의 호기심에 대처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고안해 왔다. 유감스럽게도 그 대부분은 아이의 학습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가장 일반적인 생각은 장난감을 아이가 망가뜨릴 수 없는 것을 주면 좋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체로 귀여운 분홍색 딸랑이를 사준다는 식이다. 딸랑이보다 복잡한 것도 있겠지만 장난감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은 장난감을 아이에게 쥐어주면, 아이는 잠시 빤히 보고(그래서 장난감은 밝은 색깔로 칠해져 있다), 소리가 나는지 어떤지 흔들어 보고(그래서 딸랑이는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맛을 보고(그래서 물감은 독성이 없는 것을 쓴다), 냄새를 맡아 본다(장난감이 어떤 냄새가 나야 하는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장난감은 냄새가 없다). 여기까지 약 1분 30초가 소요된다.

그런데 선물로 받은 장난감에 관하여 자신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낸 아이는 곧 바로 팽개쳐 버리고 그것이 들어 있던 상자에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에게 상자는 장난감과 같은 정도로 흥미롭기 때문에(그래서 장난감은 반드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사야 한다), 상자에 관해서도 같은 정도로 학습한다. 이것도 약 1분 30초가 소요된다.

실제로 아이는 장난감보다도 상자 쪽에 더 많은 흥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상자는 부숴도 꾸중 듣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장난감에는 없는 이점이다. 장난감은 부숴지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아이의 학습 능력을 제한한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은 아이의 주의 집중 시간을 2배로 신장시키는 좋은 방법으로 본다. 정말로 그럴까? 우리는 다만 흥미 있는 물건을 2개 준 것이 아닐까? 후자인 것이 명백하다. 결국 이런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흥미를 집중시킬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습할 것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습 대상이 많이 있다면 흥미 집중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아이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와 같은 예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자신의 눈에 들어 오는 여러 가지 증거를 무시하고, 아이의 주의가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아이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군' 등으로 생각하고 만다. 이렇게 따진다면 나이가 어린 아이는 모두 머리가 좋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면 2세의 아이가 방 한쪽 구석에 앉아서 5시간 동안이나 딸랑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마 그 아이의 부모 처지에서는 그러는 아이가 매우 걱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학습 의욕을 방해하는 제2의 일반적 방법은 플레이 팬(play pan: 격자로 둘러 친 갓난 아기의 우리; 아기우리)에 넣어 두면 된다는 생각이다. 플레이 팬이라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실제로는 '우리'나 '감옥'을 뜻한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조금 정직한 태도가 되어 '아기를 위하여' 아기우리를 사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아기우리를 사는 것은 자신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만화가 있다. 아기우리 속에 엄마가 들어가서 독서에 열중하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한편 아이들은 우리 밖에서 놀고 있지만 엄마 쪽으로는 가지 않는다. 이 유머는 유머에 지나지 않지만, 이 만화에는 다른 진리가 있다. 즉 세상사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엄마는 고립되어 있어도 괜찮지만, 이제부터 매우 많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아이는 우리 밖에서 모험과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기우리가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를 대부분의 부모들은 모르고 있다. 아이가 세상사에 대하여 배울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정상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배밀이, 네 발로 기는 기회도 제한되기 때문에 신경학적 발달도 현저하게 제한된다. 그 결과 시각, 손 기능, 손과 눈의 협동 및 조화, 기타 여러 가지 면의 발달이 방해 받는다.

우리들 부모들은 아이가 전기 코드를 문다거나 계단에서 떨어지는 위험한 일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아기우리를 구입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 왔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부모가 아이들에게 위험이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 항상 주의할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하여, 아이를 아기우리 속에 집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푼돈 아끼다 큰돈 잃는 격이다.

아무래도 역시 아기우리가 필요하다면, 아이가 인생의 이 중요한 시기에 배밀이와 기어 다니기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길이 3.6m, 폭 60cm 통로를 만들어서 배밀이하거나 기어다닐 수 있게 하면 된다. 또 그러한 아기우리라면 방을 막을 것도 없이, 한쪽 벽을 따라 장소를 잡기만 한다면 부모로서도 형편이 좋지 않을까?

학습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아기우리는 딸랑이보다도 훨씬 나쁘다. 왜냐 하면 아이는 엄마가 우리 속에 집어넣어 주는 장난감을 전부 각각 1분 30초씩 걸려서 학습을 끝내고 나면 더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아이가 장난감 하나하나에 관하여 학습이 끝나면 우리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아이를 좁은 곳에 가두어 둠으로써 물건을 부순다는 학습의 한 방법을 아이로부터 빼앗는데 성공한 셈이다. 아이를 물리적, 감정적, 교육적 공백으로 몰아넣고 마는 이 방법은 아이가 우리에서 나오고 싶어서 꽥꽥 소리 지르는 것을 참을 수만 있다면 잘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참을 수 있다고 해도 드디어 아이가 우리의 울타리를 타고 넘어 새로운 학습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전기 스탠드를 부수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가 학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도 가능하다면 빠르게, 배우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도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는 아이의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너무나도 소홀히 지나쳐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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