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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부터 학습의 시작
KIDCA
2002.02.20 15:02

태어나는 순간부터 학습의 시작


인류 역사상 1세 6개월에서 4세까지의 아이들의 호기심의 절반 정도나마 가지고 있었던 성인은 과학자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는 아이들의 뛰어난 호기심을 우리 성인들은 집중력의 결여라고 오해하여 왔다.

물론 우리들은 아이들을 상세히 관찰해 왔다. 그러나 그 행동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한 예가 두 가지 낱말의 혼동이다. 이 두 낱말은 전혀 다른 것인데도 같은 말인 것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학습과 교육이란 두 낱말이다.

사전에 의하면 '학습'은 '공부, 지도, 경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한편 교육은 '(1) 교사, 지도자, 학교의 기능을 통해서 그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 (2) 교육을 배푸는 것, 학교에 보내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즉 학습은 일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개인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가리키며, 교육은 학교나 선생의 지도 아래 행해지는 학습 과정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만한 것은 누구나 아는데도 불구하고, 두 가지 말은 간혹 혼동되어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학교 교육이 6세에 시작되기 때문에 학습이란 보다 중요한 과정도 6세에 시작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학습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6세에 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방대한 양의 정보와 사실을 흡수한다. 어쩌면 그때까지 배운 것이 그 후의 학습량보다도 더 많을지도 모른다. 6세까지 아이들은 자신과 가족에 대하여 기본적인 사실을 거의 학습한다. 나아가서 이웃집 사람들, 그들과 자신과의 관계,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 세상과 자신의 관계, 그리고 문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무수한 사실을 학습하게 된다. 특히 앞으로 사용할 한 가지 언어를 거의 터득하게 된다. 아이들 중에는 2개 국어 이상을 습득하는 아이도 있다 (실제로 6세가 지난 다음에는 외국어를 참된 의미로는 습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일이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기 훨씬 이전에 일어난다. 어른들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 시기의 학습 과정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어른들이 그 진가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면, 그 속도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리 진행된다.

어린 아이의 몸 속에는 배우고 싶어하는 무한한 욕망이 불길처럼 타고 있다. 그 욕구를 완전히 지워 없애려면 아이를 사멸시키는 수 밖에 없다. 아이를 격리시켜 놓으면, 대부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13세의 백치 아이가 다락방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백치였기 때문에 묶여 있었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묶여 있었기 때문에 백치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현실성이 있다. 비정상적인 부모가 아니라면, 아이를 침대에 묶어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이가 침대에 묶인 것은 부모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고 그 결과 아이는 백치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학습의 기회를 전면적으로 박탈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험 범위를 제한하면,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욕구는 감퇴한다. 불행하게도 거의 세상의 대부분의 어른들이 해온 일이 그랬다. 어차피 아이들은 배울 수 없을 것이라고 과소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장애를 가급적 많이 제거해 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아이들의 학습량은 현저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학습 능력을 인정하고 학습의 기회를 무제한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격려해 준다면, 아이들이 흡수하는 지식과 잠재력은 몇 배로 증가한다. 각기 따로따로 존재했지만 어느 시대이건 아이의 능력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읽기를 비롯해서 연령 이상의 것을 가르친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게 가정에서 계획적으로 학습의 기회를 부여한 결과는 모두 매우 높은 지능을 갖춘 명랑하고 적응력이 있는 아이로 키워, 모두 '훌륭하다'는데서 '놀랍다'는 정도로 평가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중요한 점은 이 아이들은 결코 처음부터 높은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특별한 학습 기회를 주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부모가 나이가 어릴 때 가급적 많은 지식을 주려고 결심한 것 뿐이라는 점이다. 어느 시대나 위대한 교육자들은 아이들에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 주라고 지적해 왔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 방법까지 말해 준 예는 적은 편이다.

옛날 유태인 학자는 부모들에게 히브리어 글자 모양의 빵을 굽고, 아이들이 그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먹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마찬가지로 석판 위에 벌꿀로 히브리어의 낱말을 쓰고, 아이들이 그것을 읽고 난 후에 핥아 먹도록 했다. "율법의 낱말들이 꿀같이 달다 (구약 성서)"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이에게 관심이 있는 어른이라도 아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 보면, 어째서 지금까지 알지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1세 6개월의 아이가 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 보자. 아이는 우선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불안감을 갖게 하는 행위만 한다. '왜 그럴까?' 하는 호기심을 버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러면 안 돼" 하고 꾸짖거나 좁은 구석에 가두어 두어도 아이는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어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어른들은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아이는 전기 스탠드, 커피잔, 전기 소켓, 신문, 기타 방 안에 있는 물건에 대하여 흥미를 가진다. 전기 스탠드를 넘어뜨리고, 커피를 엎지르고, 전기 소켓에 손가락을 집어 넣고, 신문을 찢는다. 이런 식으로 아이는 항상 배우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 어른들은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귀찮은 일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이 아이는 과잉 행동의 경향이 있고, 주의가 산만하다' 라고 말이다. 온갖 사물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도 말이다.

아이는 자기 주변 세계를 학습하기 위하여 5감을 모두 최대한으로 활동시킨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이 5가지 감각에서 얻은 정보가 뇌에 전달되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학습하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 아이는 이 방법을 모두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눈에 전기 스탠드가 보였다. 그래서 그것을 끌어당겨 넘어뜨려서 만져 보고, 소리를 듣고, 눈으로 관찰하고, 냄새를 맡아 보고, 맛을 보는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아이는 스탠드에 대하여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방 안에 있는 다른 물건에 대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방 안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의 모든 것을 사용하여 흡수할 수 있는 데까지 학습하지 않고는 방에서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는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학습하고 있는데, 어른은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말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학습 과정이 너무나 비싸게 먹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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